제주의 바다는 아름다움과 더불어 치열한 생존의 터전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바다에서 숨을 참고 물질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제주 해녀들. 그들은 단순한 직업인을 넘어 한 지역의 문화를 이루었고, 지금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주 해녀의 삶과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 그리고 그 가치를 어떻게 계승해 나가야 할지 살펴보겠습니다.
해녀의 삶, 바다를 품은 여성들의 생존 방식
제주 해녀는 특별한 장비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가 해산물을 채취하는 여성 잠수부를 일컫습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소라, 전복, 해삼, 미역, 톳 등 다양한 해산물을 채취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오랫동안 제주 여성의 강인함과 자립성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남성들이 육지로 나가거나 바다에서 사고로 희생되는 일이 많았던 시대, 해녀는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해녀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물때’라 불리는 조류의 흐름과 날씨, 조수 간만의 차이를 고려하여 출해 시간을 정하며, 여름에는 아침, 겨울에는 한낮을 중심으로 물질을 합니다. 아무런 산소 호흡기도 없이 한 번 숨을 참고 12분 이상 바다 속을 드나들며, 하루 평균 34시간 가량 잠수를 반복합니다. 이처럼 위험한 작업은 고도의 숙련을 요하며, 일반적으로 소녀 해녀는 '해녀학교'라 불리는 지역 공동체의 교육과 전수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숨비소리’입니다. 물질 후 물 위로 올라오면서 내뿜는 숨소리로, 특유의 휘파람 같은 소리는 해녀의 생존을 알리는 신호이자, 정신적 안정을 위한 호흡법입니다. 이 소리는 제주 바다의 또 하나의 언어이며, 해녀 공동체만의 독특한 문화 요소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해녀는 나이와 숙련도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는데, 상군 해녀는 수심 10m 이상까지 자유롭게 내려갈 수 있는 최고 숙련자를 의미합니다. 그만큼 해녀는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오랜 시간 몸으로 익히는 기술자이며,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생태 실천자입니다.
공동체와 협업의 문화, 해녀가 만든 연대의 가치
제주 해녀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 중심이라는 점입니다. 해녀들은 각자 물질을 하되, 마을 단위로 ‘해녀회’라는 협업 조직을 만들어 공동의 규칙을 따르며 활동합니다. 이는 단순히 작업 분담이나 수익 분배에 국한되지 않고, 바다라는 공공자원을 보존하고 지속 가능하게 이용하려는 지혜의 산물입니다.
예를 들어, 해녀들은 물질 가능한 해역을 ‘물질터’라고 부르며, 이를 일정 기간 휴식시키는 ‘해역 휴식제’를 자체적으로 운영해 왔습니다. 이는 자원 남획을 방지하고 바다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최근에는 이 제도가 법제화되기도 했지만, 사실 제주 해녀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를 자발적으로 실천해온 생태 선도자들이었습니다.
또한, 해녀들은 ‘망사리’라 불리는 작은 망태기를 들고 물질을 하는데, 이 망사리에 해산물이 가득 차면 해녀회에서 지정한 장소에 모아두고 수익을 균등하게 배분합니다. 작업에 따른 이익을 공정하게 나누는 과정 속에서 해녀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유대를 형성해왔습니다. 여기에 ‘물질 순번’, ‘출해 시간 준수’,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는 순찰’ 등 규칙도 엄격히 지켜야 합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해녀들의 상부상조 문화입니다. 해녀 중 누군가가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리면 공동체가 비용을 모아 지원하거나 병문안을 다니는 일이 일상적입니다. 이처럼 해녀 문화는 단순한 생업을 넘어, 여성들끼리의 상호 의존과 협력, 공동체 정신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문화적 유산입니다.
해녀 공동체는 외부의 침입에도 강하게 단결해왔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어민의 무분별한 해역 점유에 맞서 싸우기도 했고, 해방 후에는 자율적 자치조직을 통해 바다 자원을 지키기 위한 여러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해녀라는 존재가 제주의 자연과 문화를 지키는 주체임을 보여줍니다.
유네스코 등재와 해녀 문화의 미래
제주 해녀 문화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등재 이유는 단순히 고유한 잠수 기술 때문만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공동체 중심의 삶, 여성 주도의 문화라는 복합적인 요소가 국제적으로도 유례없는 독특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생태 환경 보전과 여성의 자립성, 공동체 연대라는 가치가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지금, 해녀 문화는 단순한 전통을 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녀 문화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고령화와 함께 젊은 세대의 유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으며, 2020년 기준 해녀의 평균 연령은 70세를 넘었습니다. 이미 1만 명을 넘던 해녀 수는 현재 약 3,000명대로 감소했으며, 이마저도 대부분이 상군이 아닌 고령의 중·하군 해녀들입니다. 후계자 부족과 고된 작업 여건, 산업화로 인한 바다 환경 악화는 해녀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제주도와 문화재청, 민간 단체들은 해녀 전수학교 운영, 해녀 박물관 및 영상 아카이빙, 해녀 체험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해녀 문화 보존에 힘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청년층이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신규 해녀 양성 교육’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해녀 관련 다큐멘터리와 영화, 공연 등을 통해 그 문화적 가치를 널리 알리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녀들의 삶을 문화예술 콘텐츠로 재해석하는 작업도 활발합니다. 해녀의 일상을 담은 사진전, 해녀의 시선으로 본 바다를 그린 회화, 해녀가 등장하는 현대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는 해녀 문화의 새로운 전승 방식이자 현대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해녀 문화는 그 자체로도 가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삶의 태도와 철학입니다. 자연을 존중하고, 공동체를 중시하며,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는 자세는 지금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귀중한 유산입니다.
바다에서 길어 올린 삶의 철학
제주 해녀는 단순한 바다노동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연과 공존하며, 여성의 힘으로 생계를 일궈낸 독립적인 존재이고, 공동체와 협업을 중시하는 문화의 주체였습니다. 해녀 문화는 단지 기록에 남을 유산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우리가 계승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방식입니다. 바다를 품은 해녀의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앞으로도 이어져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입니다.